보통 원작을 극장판으로 만들때 원작에서 자신의 주관을 넣어 만드는 것이 관행입니다.

바이오해저드(레지던트 이블)이나 엑스맨, 배트맨의 다크나이트처럼 원작을 재구성해서 만들죠.


린타로는 은하철도999를 극장판으로 만들때 자신의 주관을 넣어 재해석해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기계인간을 극도로 나쁜 것으로 만든 것은 린타로감독의 은하철도999 극장판입니다.

여기서 프로메슘과 기계인간을 아주 악랄하게 묘사했죠. 하지만 그건 극장의 흥행을 위해서 어쩔수 없다고 봅니다.

극장판은 극적인 효과가 있어야 흥행되니까.

하지만 말도 안되는 억지설정이 있습니다. 특히 프로메슘의 묘사는 악랄한 정도를 넘어서 철저히 망가뜨리죠.

린타로의 재해석이 프로메슘을 참혹하게 망가뜨려나서 과연 천년여왕이 제작될수 있는지 의문시되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더구나 그때는 레이지세계관이 저무는 해였고 건담이 뜨는 해였죠.

천년여왕이 제작되지 않는다면 자신이 구상한 레이지버스를 구축할수 없으므로 결국 레이지선생은 특유의 말장난을 하죠.

프로메슘2세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까지 만들고 도에이는 천년여왕이 메텔이라고 광고까지 했으니까요.

천년여왕 만화, 극장판에서는 프로메슘이 프로메슘2세라고 합니다. 하지만 TV판은 프로메슘은 2세가 아니라 프로메슘1세. 즉 프로메슘으로 나옵니다.

그 리고 천년여왕TV판은 프로메슘을 2세란 단어를 쓰지 않고 프로메슘이라고 정의하죠. 대신 프로메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고 유키노야요이를 쓰다가 34회에 등장해서 드디어 야요이의 이름이 라 안드로메다 프로메슘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만큼 처음에 프로메슘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극도로 자제한 것이죠.


처음부터 천년여왕을 프로메슘이라고 했다간 천년여왕이 제작되지도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었으니까 팬들에게 사기친점을 용서가 되긴 합니다. 전 그냥 레이지를 탓하지 않고 린타로탓이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사기를 치지 않았다면 천년여왕의 유키노야요이의 천사같은 모습를 보지 못했으니까요.


세월이 흘러 메텔레전드, 우주교향시메텔로 천년여왕이 메텔이 아니라 프로메슘이다고 발표합니다.

하지만 천년여왕를 메텔로 믿는 수많은 팬에게 대못을 받게 만들었죠. 지금도 천년여왕이 메텔이라고 굳게 믿고 계시는 분이 아직도 있습니다.



린타로의 설정

1. 메텔의 몸이 테츠로의 어머니의 복제육체라는 설정과 프로메슘의 성격 

2. 테츠로의 아버지가 지구인에서 라메탈인으로 바꾼점

3. 기계백작이 프로메슘의 부하가 된 점

4. 기계인간의 인간의 영혼을 흡수한 설정

5. 코스모스드라곤총에 관한 설정과 토치오가 극장판에서 등장한 점



1. 메텔의 몸이 테츠로의 어머니의 복제육체라는 설정과 프로메슘의 성격 


가. 레이지의 설정

 프로메슘. 레이지의 설정에선 아름답고 자애로운 천사같은 여자입니다. 천년여왕이고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존재이죠. 지구와 라메탈을 구하기 위해 희생하고 닥터반과 결혼해 아름다운 메텔과 에메랄다스을 낳습니다.

당연하지만 메텔이 아름다운 미녀인 이유는 프로메슘이 원래 초절정미녀이기 때문입니다. 천년여왕의 피는 속일수 없는 법이죠.

 하드기어에게 속아 기계화되었지만 기왕 기계제국의 여왕이 된  이상 정말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 런데 문제는 영원의 삶을 보장받은 기계인간들이 너무 나태해져서 일을 제대로 안하고 생산성이 극도로 떨어지게 됩니다. 은철티비판 마지막에서 기계인간들이 일은 안하고 흥청망청 놀고 자살하고 하는 모습이 나오죠. 자신의 기계제국이 서서히 붕괴될 기미를 보이자 메텔에게 시켜서 순진한 소년을 데리고 와서 기계제국에 활력을 불어줄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영원한 삷에 지쳐서 흥청망청 놀게 되죠. 꼭 소련과 비슷한 양상으로 되어버리죠. 그리고 지루함에 빠진 기계인간인 메인, 사부(은철TV판108화)가 전쟁같은 것을 해서 시간를 때우다가 프로메슘몰래 탈출하지만  분노한 프로메슘에 의해 죽게되죠. 메인, 사부는 나중에 기계백작같은 기계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 프로메슘이 바로 죽여버립니다. 

 암튼 여기서의 프로메슘은 기울어져가는 기계제국을 어떻게 해서든 유지할려고 하다가 테츠로로 인해 끝을 맺게 되죠.


레이지의 프로메슘은 아름다운 외모에 착한 마음의 천사같은 여성으로 타인의 위해서 자신의 희생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나. 린타로의 설정

하지만 린타로의 설정은 정반대입니다. 린타로의 프로메슘은 테츠로엄마의 DNA를 바탕으로 테츠로엄마의 복제육체에 메텔의 영혼을 집어넣은 것으로 묘사합니다. 린타로의 프로메슘은 기계화제국을 탄생시킨 천재 과학자로 나옵니다. 프로메슘은 타인에게 비정하였으나 메텔에게 온화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의 딸에게 무례한 말을 하면 죽여버리겠다.'

'메텔, 부모인 나를 너마저도 배신하겠다는 거냐?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을 너에게 준 나를.. 영원한 생명을 준 나를....'


린타로의 설정속의 닥터반은 프로메슘의 기계 만능 사상에 반감을 가졌고 또한 테츠로 엄마에게 홀랑 빠져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그들 모자를 피신시켰습니다. 또한 테츠로엄마를 잊을수없었는지 테츠오엄아의 복제육체에 메텔의 영혼을 집어넣는 파렴치한 짓까지 저질러버렸습니다. 당연히 프로메슘은 닥터반를 미워할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프로메슘은 자신의 유일한 딸인 메텔을 사랑하고 있었고 메텔을 그녀의 유일한 후계자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메텔은 프로메슘을 배신하였고 속편에서 또 배신당하고 말죠. 수많은 사람들이 프로메슘을 증오했으나 메텔은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말을 따라주는 유일한 존재라서 프로메슘은 메텔을 정말 좋아했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메텔은 프로메슘을 저버렸고 결국 프로메슘을 유일하게 지지한 것은 친딸인 메텔이 아닌 기계인 셈이였죠. .


린타로의 프로메슘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질투심으로 타인을 해치는 악랄한 존재이다.



다. 결론

하지만  린타로의 설정은 모든 레이지버스의 설정을 붕괴시켜버리게 하는 역할을 해버립니다. 아무리 극장판흥행을 위해서 악역을 철저하게 악랄하게 만들었지만 이건 그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일단 메텔이 원래 프로메슘에게 태어난 몸 그대로라는 레이지의 설정과 메텔의 몸이 테츠로의 어머니의 복제육체라는 린타로의 설정이 정면으로 부딪혀서 팬들에게 큰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설정은 프로메슘이 천년여왕이라는 레이지의 발표와 메텔레전드, 우주교향시메텔이라는 작품으로 메텔은 프로메슘에게 태어난 몸 그대로라는 설정으로 되어있습니다.(즉 만화원작을 충실히 따랐습니다.)

암튼 린타로의 막장설정은 레이지버스의 설정을 붕괴시켜버리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테츠로의 어머니의 복제육체라는 이 설정때문에 모든 레이지버스의 설정이 오류가 극심하게 됩니다.




2. 테츠로의 아버지가 지구인에서 라메탈인으로 바꾼점

은 철티비보시면 가끔 테츠로가 아버지에 대해서 회상하는데 테츠로의 아버지는 건설노동자입니다. 그리고 지구인이죠. 테츠로어머니 카나에도 지구인이구요. 테츠로의 아버지는 가족읠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사 사고사로 죽어서 더욱더 가난하게 되었고 밥을 먹지못해서 아사직전까지 가자 테츠로의 어머니는 테츠로에게 기계인간이 되라고 합니다. 기계인간이 되면 사고사로 죽을 위험도 없고 가난과 추위에 떨 이유가 없기때문에 카나에는 테츠로에게 기계인간이 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린타로가 뒤집어 업어버렸죠. 스타워즈의 대성공으로 인해 은하철도에 스타워즈를 도입합니다. 테츠로의 아버지는 라메탈인으로서 프로메슘의 부하이고 기계인간의 열렬한 추종자로 나옵니다. 그리고 테츠로와 카나에을 기계인간으로 만들려고 하지만 카나에를 사랑한 닥터반이 피신시키죠. 그래서 닥터반은 분노한 프로메슘으로 인해 목걸이가 됩니다.

그리고 기계백작을 시켜서 카나에를 박제한 것으로 나오죠. 그리고 닥터반은 프로메슘몰래 카나에와 바람을 피운 것으로 나옵니다. 

암튼 나중에 스타워즈2편과 비슷하게 아버지인 파우스트와 테츠로가 대결을 하게 되고 파우스트는 블랙홀에 흡수되어 죽게 됩니다.



3. 기계백작이 프로메슘의 부하가 된 점

테 츠로엄마박제건은 프로메슘과 전혀 상관이 없지만 린타로의 극장판은 프로메슘의 더욱더 악역으로 만들기 위해 기계백작이 프로메슘의 부하로 설정되고 프로메슘의 명령에 위해 박제한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기계백작이 시간성의 주인으로 나오고 데류즈는 기계백작의 부하로 나옵니다. 이것도 역시 프로메슘의 악역으로 만들기 위해 만든 설정이죠.

 하지만 테츠로어머니의 박제는 기계백작이 자신의 취미인 콜렉션수집을 위해서 박제한것이 원래의 설정입니다. 

 원 래 레이지의 설정은 가짜하록이 시간성의 주인이죠. 가짜하록이 프로메슘의 부하가 나옵니다. 메텔은 프로메슘의 명령을 받고 수 많은 소년를 기계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데려갔고 프로메슘에 의해 기계인간이 된 첫번째 소년이 가짜하록입니다. 

가짜 하록은 이런 메텔의 정체를 알아서 타락해버렸고, 한때 하록을 동경했던 평범한 소년이었습니다. 가짜하록은 자신을 하록으로 속여서 데류즈를 연인으로 만든 후 시간성을 만듭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름답고 마음착한 데류즈가 하록에게 반할지언정(비록 가짜하록이었지만) 쓰레기같은 기계백작의 부하가 될리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린타로의 억지설정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죠.


시간성의 주인이며 프로메슘의 부하이자 메텔이 프로메슘에게 데레가서 기계화가 된 첫번째 소년 가짜하록. 



4. 기계인간의 인간의 영혼을 흡수한 설정

이것또한 극장판흥행을 위해서 만든 설정입니다. 기계인간이 더욱더 악랄할수록 극장판의 흥행이 보장되니까요. 린타로의 설정은 기계인간은 인간과 공존할수 없는 존재로 묘사되죠.

하긴 인간의 영혼을 빨아들이는 악마같은 존재인데 공존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레이지의 세계에선 기계인간은 기계인간은 인간과 공존할수 있다고 묘사됩니다. 레이지의 세계에선 기계인간이 인간의 영혼을 취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은하철도999TV판에서 인간들을 구해주고 지켜준 존재가 기계인간이었죠.

몇회인지 기억이 안나지만 그여성기계인간이 수백개의 기계고양이를 만들어서 오히려 정부를 전복하고 다시 평범한 인간들이 잘 살수 있도록 노력했지만 그냥고양이가 인질에 잡혀서 실패하고 사형당하죠.

그 밖에도 화가기계인간도 생각납니다. 역시 테츠로가 전기나무잎을 줍을려고 하자 화가기계인간이 대신 줍다가 대신 불타올라서 죽죠. 

류즈와 데류즈자매도 기계인간이었고 기계인간인 크레아도 테츠로를 위해 자기몸을 희생하죠. TV판은 3회에서 극장판은 마지막장면에서...

나중에 우주교향시메텔에서 아리나가 등장해서 자신을 희생해서 라메탈를 구하는 것으로 기계인간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묘사됩니다



5. 코스모스드라곤총에 관한 설정과 토치오가 극장판에서 등장한 점

원 래는 우주전사의 총으로 나옵니다. 타이탄의 잠자는 영웅편에서 노파는 자기 아들이 최고의 우주전사가 되어서 적수가 없자 고향으로 되돌아갔는데 허무하게 뒤통수를 맞아 어이없게 죽자 슬픈 나머지 테츠로에게 아들의 유산을 모두 건네는 것으로 나옵니다. 하지만 린타로는 노파를 토치로의 어머니로 바꾸었고 시간성으로 가서 토치로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총을 건네는 것으로 바뀌는데 레이지는 코스모스총에 관한 자신의 설정을 모두 버리고 란타로의 설정을 받아들여서 코스모스드라곤은 토치로가 만들었다는 설정으로 되어있습니다. 

원래는 토치로가 무한궤도에서 죽어서 아카르디아호로 영혼으로 복귀한다는 설정이 테츠로가 도와주었다는 설정으로 바뀝니다. 하지만 제가 무한궤도를 보지 못한 관계로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토치로는 지구인인데 언제 타이탄으로 가버렸는지 약간의 오류가 존재하긴 하죠.




극장판의 숙명

극장판은 한정된 시간안에 모든 것을 보여주여야 하고 흥행에 대한 부담감이 심합니다. 그래서 재해석은 극장판의 숙명일수 밖에 없죠. 

린타로식으로 재해석한 린타로의 극장판이 대히트를 했고 레이지의 원작을 충분히 반영한 이터널판타지는 대실패을 했으니까요.

다른 작품을 보더라고 알수가 있습니다. 레지던트이블(바이오해저드)도 원작보다 감독이 재해석한 작품이죠. 앨리스가 갑자기 초능력이 사용하는 것에는 약간 어이가 없지만...

원작인 만화배트맨하고 극장판인 다크나이트하고 차이가 많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팀버튼의 배트맨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극장판은 별수 없이 감독의 주관적 견해가 들어갈수 밖에 없습니다.



이글은 예전에 개소문에 처음 작성하였고 그후  완성본을 클리앙에 올렸습니다. 그외 PGR21, 프라임차한잔, 오유에도 올렸습니다.  
티스토리에 자리잡으면서 여기에 다시 올립니다.
다른 사이트에 올라간 글은 작성자의 허락없이 무단으로 가져간 것을 알려드립니다.


1985~1995년 사이의 가요사를 정리하여 서태지, 현진영, 이수만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 90년대 가요사라는 글로 작성해봤습니다. 특히 김완선, 서태지, 현진영, 이수만, 이현도등 5명의 주요인물 위주로 작성했습니다. 정확하게는 8090의 가요사가 됩니다..
-------------------------------------------

부제: 댄스음악의 성지 문나이트



1. 김완선 댄스음악의 시대를 열다.

8090년대의 아이돌이라고 할수 있는 소녀가수들, 즉 10대의 나이에 데뷔한 하이틴여가수는 김완선, 이지연, 강수지, 하수빈, 이상은이 유명하였고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수빈, 강수지, 이지연이 청순가련형의 미소녀아이돌스타일로 인기를 얻었다면 김완선은 섹시하고 도도한 팜므파탈적인 매력으로, 이상은은 보이시한 톰보이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얻었습니다.

1978년 한백희는 인순이를 희자매로 데뷔시킨후에 김완선, 이주노, 박철우를 발굴하여 혹독하게 트레이닝을 시켰습니다. 김완선은 한국가요계에서 최초의 연습생이며 1983년14살의 나이에 발탁되었습니다. 한백희는 희자매가 해체되자 인순이를 솔로로 전향시키면서 "인순이와 리듬터치"라는 백댄서팀을 구성하고 로드매니저로 김광수(현 코어사장)를 채용합니다. (1985년, 리듬터치의 백댄서멤버: 이주노, 김완선, 박철우) 한백희는 김완선을 백댄서로 기량을 가다듬게하고 1986년 김완선을 17세의 나이에 데뷔시킵니다. 김완선의 등장은 한 마디로 쇼킹 그 자체였습니다. 그녀가 들고 나온 음악과 스타일, 컨셉, 안무, 무대 구성등은 예전의 기성 가요와는 궤적을 달리하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시도였죠. 그 후 인순이, 이주노, 박철우는 한백희곁을 떠나게됩니다. 이때 리듬터치에서 안무를 맡았던 안무가는 이주노와 박철우를 데리고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를 창단합니다.

1987년 한국의 조용필과 김완선, 필리핀의 루 보네비, 홍콩의 알란탐, 일본의 다니무라 신지, 후세아끼라등 아시아의 정상급 가수등이 참여하는 팍스 뮤지카 87(PAX MUSICA)을 개최합니다. 이때 김완선은 놀라운 기량을 선보이자 NHK에서 한국의 최고아이돌이라는 주제로 10분이나 김완선을 다뤘습니다. 결국 일본에서 진출제의가 들어왔고 이때 김완선은 일본의 프로덕션에서 녹음을 하였는데 일본의 프로덕션에서 춤추는걸 봐야된다고 해서 춤을 추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가수의 안무에 김완선의 안무를 그대로 빼긴후 미국에 데려가 영상을 찍은 사건이 발생하여 크게 실망한 김완선은 한국으로 귀국을 합니다. 이때 라이벌인 이지연이 돌연 은퇴를 하였습니다. 1990년 김완선은 5집을 발표하면서 큰 인기를 끈 후 1991년에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가장무도회가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100만장을 팔아치웠고 MBC 10대 가수에 선정되어 최정상의 여가수가 됩니다.

김완선 - 리듬 속의 그 춤을


한국의 최고아이돌 김완선 - 일본 NHK뉴스 방영


김완선 - 가장무도회


http://goo.gl/LVqb7s  김완선 - 오늘 밤 Tonight (일본 ABC TV 안녕하세요! 아침해입니다)
http://goo.gl/F8nhL 김완선 - 오늘밤(데뷔무대)
https://goo.gl/j1lGFr 김완선 -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https://goo.gl/Z27ZO8 김완선 - 기분 좋은 날

김완선의 데뷔이후 10대의 소녀가수들이 연이어 데뷔하였는데 특히 이지연, 강수지, 하수빈, 이상은이 유명하였습니다. 백두산리더 유현상은 경복여고에서 락밴드 보컬을 하던 소녀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미모에 어울리지않은 가창력에 반해 이지연을 데뷔시킵니다. 이지연은 김완선과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함께 '여고생 가수'로 인기몰이를 하였습니다. 강수지는 16살때 미국으로 이민하여 가스펠밴드 보컬을 하다가 89년 교포가요제에 금상을 수상하면서 MC였던 송승환을 알게됩니다.  그후 송승환의 국내전화번호와 단돈100달러를 들고 89년에 한국행을 감행하여 1년만에 데뷔를 하게됩니다. 하수빈은 1990년(17세)에  초콜릿CF모델이 되기위해 미국에 갔다가 현지공연프로모터의 눈에 띄어 리사라는 예명을 받고 미국팝가수인 토미페이지한테 "I`m Falling in love"라는 곡을 받아 1992년(19세)에 가수로 데뷔하게 됩니다. 이상은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등장하였는데 18세의 나이에 당시 보기힘든 보이시스타일로 남자들이 아닌 소녀팬들의 열광적 추종을 이끌어낸 한국가요사에서 파격적인 여자아이돌 중 한명이었습니다.   당시 MC였던 이수만은 이상은에게 깊은 인상을 받아  먼 훗날 F(x)의 제작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이들은 현재 유행하는 아이돌가수들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이지연, 강수지, 하수빈은 SES, 핑클, 장나라같은 아이돌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이상은같은 특이한 스타일은 훗날 F(x)의 엠버로 재탄생하였고 엠버도 보이시한 톰보이스타일로 소녀팬들의 추종을 얻었죠. 특히 김완선에게 선보인 연습생시스템은 현재 아이돌기획사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수만이 김완선을 모델로 보아를 프로듀싱한것은 유명한 애기입니다. 참고로 걸그룹으로는 세또래가 있었습니다.

이지연 - 난 사랑을 아직 몰라

http://goo.gl/ikEzAt 이지연 - 바람아 멈추어다오
http://goo.gl/KVpb8 이지연 - 그 이유가 내겐 아픔이었네 (1988)
http://goo.gl/bR3Zjp 이지연 - 늦지 않았어요

강수지 - 보라빛향기

https://goo.gl/ulWBri 강수지 - 혼자만의 겨울

하수빈 - 더이상 내게 아픔을 남기지마 (''92)


http://goo.gl/xZFrS7  하수빈- 노노노노노

https://goo.gl/42B6tG 이상은 - 담다디

http://goo.gl/Taz6dv 이상은 - 담다디 (강변가요제: MC 이수만)
https://goo.gl/Bc873C 세또래 - 그대를 사랑해






2. 이시대의 가요계 상황들

이 당시 김희애, 양수경, 김혜림, 윈준희가 데뷔하여 솔로여가수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특히 김희애, 원준희, 하수빈은 가수, 연기자, 모델의 영역을 넘나들며 활동하였습니다(김희애: 모델→연기자→가수, 원준희: 연기자→가수, 하수빈: 모델→가수). 김희애는 모델로 데뷔하여 연기자로 크게 성공하였으며 가수로도 활약을 했습니다. KBS2 라디오의 DJ들이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었는데 수록곡중 김희애가 부른 ''나를 잊지 말아요''가 인기를 얻어 가요프로그램에 반짝활동을 하게 됩니다. (모델:1982, 연기자:1983, 가수:1987). 안도희는 86년에 영화로 데뷔한후에 원준희이라는 예명으로 88년에 가수로 데뷔합니다. 뒤이어 엄정화와 장나라가 가수와 연기자의 두 영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서 큰 영향을 끼쳤는데 아이돌들이 가수, 연기자, 모델등의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하는 것이 매우 당연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양수경 - 사랑은 창밖에 빗물같아요


김희애 - 나를 잊지 말아요


https://goo.gl/bDf9Jd 원준희(안도희) - 사랑은 유리같은 것 (1989)
http://goo.gl/ScDBX7 김혜림 - 날위한 이별


1988년 신해철은 아기천사라는 밴드로 강변가요제에 참여했으나 결선에 실패하지만 그해 12월에 다시 서울대, 연세대, 서강대을 연합한 무한궤도를 결성한후 대학가요제에 참석하여 ‘그대에게’를 열창하며 대상을 거머쥐게 됩니다. 이때 프로페셔널 뮤지션 활동을 계획하는 신해철과 젊은 시절의 추억으로 여기는 무한궤도의 나머지멤버들간에 괴리가 생기자 신해철은 새멤버를 영입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정석원과 장호일등이 새로 가입하고 여러명의 멤버들이 교체되었지만 결국 몇 달만에 무한궤도는 완전해체를 합니다.

해체이유는 신해철은 정석원과 음악적견해차이였는데 신해철이 무한궤도를 탈퇴하면서 정석원과 장호일, 나머지 무한궤도멤버들은 015B를 결성합니다. 솔로로 전향한 신해철은 댄스곡 "안녕"과 발라드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재즈 카페" 등을 히트하며 인기가수로 자리잡습니다. 그러나 락밴드을 하고 싶었던 신해철은 솔로로 2장의 앨범을 낸 뒤 넥스트라는 락밴드를 결성합니다.

무한궤도 - 그대에게(신해철 데뷔무대)


http://www.clien.net/cs2/bbs/board.php?bo_table=lecture&wr_id=253707 8090의 락밴드 가요사
http://goo.gl/haKcEC 신해철 - 재즈까페
http://goo.gl/wWRxqv N.EX.T - 날아라 병아리 (신해철)
http://goo.gl/lWtYFc N.EX.T - The Ocean : 불멸에 관하여 (신해철)


양현석은 평범한 직장을 다니다가 우연히 TV에서 백댄서를 하는 친구를 보고 충격을 받아 직장을 그만두고 브레이크 댄스팀 "스파크"에 입단합니다. 당시 80년대 후반에는 수많은 브레이크 댄스팀이 있었는데 스파크, 노피플, 노파킹, 엑스레이등 여러팀이 이태원의 문나이트라는 클럽에서 춤을 췄고 점점 유명해지자 댄서들이 몰리면서 문나이트의 인맥이 형성됩니다. 이때 박남정, 이주노, 박철우가 유명했는데 춤꾼사이에 명성을 떨치면서 양현석,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이현도, 김성재가 문나이트에 등장하게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이수만이 인재를 발굴할려고 문나이트에 출입을 합니다.

1988년 문나이트에서 춤을 추던 박남정은 기획사의 눈에 띄어 가수로 데뷔한 후 양현석, 이주노, 박철우, 김영완을 백댄서로 영입해 프렌즈팀를 구축합니다. 또한 문나이트에서 DJ를 하던 신철은 나미를 만나 나미와 붐붐(1990년)을 결성하여 "인디언 인형처럼"으로 댄서와 랩퍼를 오가면서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후 신철은 미애를 만나 철이와 미애(1992년)로 가수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여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박철우는 R.ef로 데뷔, 김영완은 콜라로 데뷔)


1987년 한밭기획의 이사였던 이호연은 소방차를 기획하여 성공하였고 그걸 발판으로 독립하여 1991년에 대성기획(後身:DSP)를 창립합니다. 그후 일본의 개그맨인 다운타운이 소방차의 어젯밤 이야기를 오쟈파멘이라는 커버곡를 발표하였는데 일본에서 괘 인기가 있었습니다. 또한 도시아이들도 유명한 가수였습니다.

그당시 가요계는 소방차와 박남정, 김완선이 톱으로 군림하였고 이들은 댄스음악계의 최정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뒤이어 현진영도 큰 인기를 얻어 그들의 뒤을 바짝 추격하고 있었죠. 그러나 서태지의 등장으로 박남정과 현진영, 소방차의 운명은 바뀌게 됩니다.

소방차 - 어제밤이야기



박남정 - 널 그리며

 

 http://goo.gl/EmA0k 다운타운 - オジャパメン
http://goo.gl/Bhl1BF 이지연 - 난 사랑을 아직 몰라, 박남정 - 사랑의 불시착
http://goo.gl/5yYtK9 나미와 붐붐 - 인디언인형처럼
http://goo.gl/qkmCP2 철이와 미애 - 너는 왜
https://goo.gl/KlX7SQ 도시아이들 - 달빛 창가에서






3. 연예기획사 SM의 탄생

1981년 이수만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컴퓨터공학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이때 이수만은 미국의 MTV와 미국의 음반산업을 보며 연예기획자로 꿈을 꿉니다. 85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수만은 방송활동을 재개합니다. 다시 가수로 데뷔하기 위해 홍종화라는 작곡가를 설득 끝에 섭외하며 앨범을 발표했으나 실패한 후 가수를 그만두고 프로듀서로 전향하기로 마음먹습니다. 본격적으로 연예기획사를 설립하기 위해 인천 월미도에 헤밍웨이 까페와 방배동 까페를 차려 기획사의 사업자금을 마련한 다음 한동준과 김광진을 영입합니다.

여기서 이수만은 한국에 흑인음악을 도입하기로 마음먹고 바비 브라운을 참고합니다. 바비 브라운은 두명의 댄서와 삼각편대를 이루어 춤을 추는 형태로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서 영감을 얻은 이수만도 3인조 그룹을 기획합니다. 구체적인 구상이 끝난후 이수만은 이태원이나 여러 유명클럽에 찾아다니고, 문나이트에서 최진열을 고용한후 "음반을 낼까 하는데 주변에 춤되고 노래되는 애 있으면 찾아달라"고 일을 시킵니다. 최진열은 평소에 알고 있던 이주노와 현진영을 이수만에게 소개합니다. 이주노와 현진영을 저울질하던 이수만은 현진영이 이주노보다 노래를 잘하는 점에 현진영을 발탁합니다. 이때는 1988년이며 현진영은 당시나이가 16세였습니다.
http://goo.gl/oWteTF Bobbi Brown - Every Little Step: The Arsenio Hall Show

얼마후 이수만은 나머지멤버를 영입하기위해 댄스페스티벌을 개최하였는데 이주노, 양현석, 구준엽, 강원래, 유영진, 미애등 여러명이 참가하였고 구준엽 강원래팀이 우승하여 최진열의 제의로 SM에 입사하게 됩니다. 당시 김승현이 사회자를 보았고 구준엽 강원래는 와와1기이며 훗날 클론이 됩니다. 이수만은 이들에게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기량을 가다듬게 합니다. 1989년 이수만은 송파에서 SM기획를 창립합니다. 최진열에게는 SM기획의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맡기고 홍종화에게는 수석프로듀서를 담당합니다.

1990년 이수만은 제1집 "New Dance"를 발표하며 현진영과 와와(구준엽,강원래)를 데뷔시킵니다. 그후 한동준과 김광진의 앨범도 발표합니다. "현진영과 와와"의 야한여자는 그당시 대세였던 박남정과 김완선, 소방차에 밀렸지만 어느정도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수만은 후속곡 ''슬픈 마네킹''을 발표했는데 인기를 얻어 현진영은 단숨에 그당시 대세였던 박남정의 라이벌로 급부상합니다. 그리고 활동도중에 구준엽과 강원래가 군대문제로 입영하게 되자 이수만은 새로 이현도, 김성재를 와와2기로 발탁합니다.


와와1기 -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span class='outlink'><a class='url' href='http://i.imgur.com/yTMWmPI.png' target='_blank'>http://i.imgur.com/yTMWmPI.png</a></span>


야한 여자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http://goo.gl/22MjRk   와와1기의 데뷔전 프리뷰

https://goo.gl/CzOtP1    슬픈 마네킹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와와2기 - 현진영, 이현도, 김성재
<span class='outlink'><a class='url' href='http://i.imgur.com/YrlT0oq.jpg' target='_blank'>http://i.imgur.com/YrlT0oq.jpg</a></span>

현진영, 이현도, 김성재 (슬픈마네킹)









4. 서태지 대격변을 일으키다

사나위에서 활동을 하던 서태지와 김종서는 신대철과 마찰로 시나위를 떠나게 됩니다. 그후 서태지와 김종서는 무궁화밴드에 입단하고 여러 나이트클럽에 진전합니다. 무궁화밴드는 캐피탈호텔에 공연하게 되었는데 우연의 일치인지 그때 "박남정과 친구들"도 공연을 하러왔습니다. 무궁화밴드의 공연이 끝난후 박남정과 친구들이 공연을 하였는데 이때 서태지는 "박남정과 친구들"라는 댄스그룹팀의 춤에 반하여 춤을 배울려고 직접 양현석에게 말을 걸었고 양현석은 문나이트에 가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태지는 한달동안 문나이트를 출입해서 지켜보다가 결국 양현석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하는데 이때 양현석은 레슨비로 한달에 150만원을 부르며 3달 레슨비 450만원을 선불로 요구하여 서태지는 지불하게 됩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레슨을 하기전에 양현석에게 군대영장이 날라왔고, 서태지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지 못한 채 군대에 가게 됩니다.  이때 서태지는 낮에는 작곡을 하면서 밤에는 연주을 하는 생활을 하였고 드디어 곡을 완성하였는데 때마침 양현석도 의가사제대를 합니다. 8개월간의 군대생활을 마친 양현석은 방정리를 하는 도중에 수첩을 발견하였고 레슨을 해줄려고 서태지에게 연락을 합니다.  서태지는 데모음악을 양현석에게 들려주고 양현석은 서태지에게 "노래가 좋다. 그런데 이 노래는 혼자 하는 것보다 팀을 이뤄하는 게 훨씬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고 서태지는 양현석의 조언에 3명의 팀을 결성하기로 결정하고 나머지 멤버를 구합니다. 5명정도의 후보를 탈락시킨후 결국 이주노까지 영입하면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그후 서태지는 데뷔를 하기위해 여러기획사와 접촉을 하였는데 이때 반도음반사의 기획실장인 유대영은 서태지의 음악을 듣고 제작을 결심하여 서태지와 계약을 합니다. 그후 유대영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총괄매니저가 된후 로드매니저로 최진열을 고용합니다. 당시 최진열은 현진영의 대마초사건으로 큰 곤욕을 겪은 상황이였죠. 그후 서태지가 MBC 특종TV연예에 출연을 합니다. 쇼의 반응은 놀라웠으며 1992년 4월에 서태지의 1집 난 알아요를 발표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방송 3사의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모두 석권하였으며, 그해 가요계에 부여된 모든 상을 휩쓸었고 데뷔 음반으로는 최다판매량인 17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하는등 대성공을 거둡니다. 그러나 유대영은 서태지와 의견충돌로 결별하였고 그후 서태지는 자신의 기획사를 차린후 최진열을 총괄매니저로 고용합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 난 알아요 (데뷔무대)

http://goo.gl/UFCzDP 서태지 - 시대유감
http://goo.gl/77ZfJu 김완선- 대만TV

서태지와 아이들은 엉청난 열풍을 일으키는데 그 여파로 소방차와 박남정, 김완선이 지배하는 기존의 댄스가요계는 무너지면서 새로운 댄스그룹들이 우후죽순처럼 데뷰합니다. 소방차는 해체하였으며 박남정은 완벽한 몰락의 길을 걷게되었고 김완선은 돌연 은퇴을 선언합니다. 김완선은 1992년 11월 MBC <특종 TV 연예>에서 은퇴를 선언하여 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습니다. 얼마후 홍콩, 대만으로 해외진출을 합니다. 그 후 김완선은 대만에서 진위엔쉬안(金元萱;김원훤)이란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큰 인기를 끌면서 원조 한류가수가 됩니다.

또한 서태지의 파격적인 등장으로 가요계는 변화를 거듭했는데 80년대 유로댄스스타일 가수들이 90년대 힙합댄스스타일 가수들로 세대교체하던 시대였으며 또한 이당시에는 Star TV와 M TV의 등장으로 90년대 초는 한해가 바뀔 수록 음악도 패션도 엄청나게 바뀌던 시대였습니다. 또한 문나이트출신댄서들이 연달아 가수로 데뷔하는데 박남정, 현진영, 양현석의 성공적인 데뷔이후 듀스, 클론, 룰라, DJ DOC등이 대성공을 거두면서 문나이트출신들은 90년대가요계에 큰 축을 형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문나이트의 출신들로 이루러진 SM, YG, JYP의 기획사들이 3대기획사로 군림하면서 현 가요계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5. 이수만 힙합과 결별하다.

1991년 부산의 야외무대에서 현진영과 와와가 공연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건장한 남자들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 현진영을 무대 아래로 끌어내려버립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이현도와 김성재는 현진영의 모습에 큰 실망을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현진영은 대미초혐의로 구속되었는데 SM기획이 경찰의 수사를 받아 최진열, 정해익같은 SM의 임직원들이 큰 고초를 껶었으며 회사의 모든 활동이 정지되었고 와와의 활동마저 중단되고 맙니다. 그 후 최진열은 반도음반사의 유대영의 제의로 SM기획을 그만두고 서태지와 아이들의 매니저가 됩니다. SM의 대표이사였던 최진열은 몇년동안 SM기획에서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관리하는 총책임자라 인맥과 노하우가 상당했죠.
[SM의 대표이사들: 최진열(1988) - 정해익(1992 ?) - 김경욱(1998) - 김영민(2005)]

이때 현진영의 무책임한 행동에 분노한 이현도는 그때부터 다른 기획사로 오디션을 보면서 가수로써 독립을 꿈꾸게 되며 나중에 가수가 된후 현진영을 디스합니다. 한편 자신의 1호 가수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볼수없었던 이수만의 노력으로 현진영은 1년만에 출소를 합니다. 그후 부활을 꿈꾸던 현진영은 이탁과 함께 여러 곡을 공동작곡을 하였습니다.

1992년 4월에 서태지가 등장하면서 거대한 돌풍을 일으키자 이수만은 잊고 있던 현진영을 찾게되고 8월에 이수만은 현진영의 2집 앨범 "New Dance 2"를 발표합니다. 타이틀곡은 문나이트에서 친한 이탁이 만든 "흐린 기억 속에 그대"였는데 당시 현진영은 커다란 후드티와 한껏 내려 입은 청바지로 코디한 후 빨라진 음악에 맞춰 현란한 댄스를 선보입니다. ''흐린 기억 속의 그대''는 높은 완성도와 함께 굉장한 인기를 얻었으며 같은 앨범의 ''너는 왜''는 ''현진영 고 진영고''라는 후렴구와 랩도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또한 과소평가되었던 싱어로써의 자질을 "너는 왜"에서 여성 백댄서와 격렬한 권투춤을 추면서 현진영 Go 진영 Go를 하면서 라이브로 빠른 랩을 소화해내며 대단한 인기를 끌었죠. 이미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과 음악에 익숙한 대중들은 "흐린 기억 속의 그대"에도 커다란 지지를 보냈고, 현진영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라이벌로 급부상합니다. 하지만 SM은 2집앨범이 유통사인 서라벌레코드의 부도로 인해 큰 손해를 입어버립니다. 



1993년 성공을 확신한 이수만은 현진영의 3집 "두근두근 쿵쿵"을 발표하였고 서태지와 아이들 2집과 현진영 3집이 정면대결을 펼칠 93년 가요계는 모두를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발표한지 일주일 만에 필로폰 투약 혐의로 현진영은 구속되었고 방송정지를 당합니다. 이때의 여파로 무려 40만장을 찍었던 현진영의 음반은 검찰에 압류되고 상품은 소각처리되어 SM은 큰 손실을 보게 되었고 월미도와 방배동의 까페를 매각하여 부도위기를 넘기게 됩니다. 그러나 소속 연예인인 한동준, 김광진, 신동엽, 김승현, 이홍렬이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 떠나게 됩니다. 이수만은 사력을 다해 현진영을 띄웠으나 그때마다 대마초와 필로폰으로 무너졌으며 결국 최종적으로 서태지가 이수만과 힙합주도권 경쟁에 승리하게 됩니다.









6. 이현도 SM을 떠나면서 힙합을 완성하다.

1991년 현진영의 대마초사건이 터지면서 이현도는 자신의 가요활동이 끝장나게되자 현진영에 대한 분노와 갑작스러운 활동정지로 인한 좌절감으로 고통스러워하다가 이대로 댄서로서 끝날수없다고 마음먹게되면서 음악을 만들고 싶은 강렬한 열망에 붙타올라 신디사이저를 구입하여 곡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후 진로를 고민하기 시작한 김성재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공부을 하기시작했고 이현도는 다시 문나이트에 다시 출입을 하면서 춤을 추게 됩니다. 이때 춤을 추면서 울분을 풀고 있는 이현도를 아는 지인이 안타까워하며 오디션을 권유합니다. 그래서 가수로 데뷔하기로 마음먹고 김성재와 함께 코어의 김광수에게 오디션을 보지만 퇴짜를 맞습니다. 미안해진 이현도의 지인은 다시 뮤즈기획을 소개하면서 들어갔으나 사무실이 없어 환경이 매우 열악하였으며 안무를 연습할 무용실이 없어 무용실을 빌려 연습했다고 합니다.

시간이 지난후 현진영이 교도소를 출소합니다. 때마침 자신의 첫곡인 "너에게만"을 완성하여 현진영에게 들려주었는데 매우 좋다면서 곡을 달라고 하였죠. 이에 반신반의하며 이수만에게 들려주었는데 이곡을 극찬하면서 현진영의 "New Dance 2"의 앨범에 수록을 합니다. 이때 현진영이 와와를 다시 하자고 제안을 하지만 큰 자신감을 얻은 이현도는 거절합니다. 이현도와 김성재가 떠나면서 이수만은 2인조였던 와와를 다인원 백댄서팀으로 개편합니다. (와와팀에 션이 있었으며 훗날 지누션으로 데뷔). 그후 김성재는 한양대에 진학하였고 이현도는 실용음악과에 응시를 했으나 떨어지면서 더욱더 작곡활동에 매달립니다. 그러나 악기만으로는 편곡까지 완성한다는 게 무리여서 유대영의 작업실을 빌려 작곡을 하였죠.

마침내 앨범을 완성하여 듀스를 결성하고 93년 4월1일에 데뷔앨범인 ''나를 돌아봐''를 발표합니다. 그러나 앨범을 발표한지 한달이 지나도 방송국에서 불러주지 않아 방송활동을 할수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였습니다. 그때 sbs의 PD가 듀스의 곡을 높게 사면서 sbs의 가요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게되면서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듀스는 힙합계에 큰 족적을 남깁니다.

한편 구준엽은 이탁과 함께 탁이준이를 결성(1993년)하여 활동하다가 이탁이 마약문제로 수감되면서 실패를 합니다. 그후 구준엽은 강원래와 함께 프로듀서 김창환 사단에 들어가 클론이라는 댄스그룹을 결성(1996년)해 큰 성공을 합니다. 그당시 프로듀서 김창환이 이끄는 라인음향은 김건모, 신승훈, 노이즈, 박미경이 맹활약하며 90년대를 지배한 유명한 기획사였습니다. 이 시기의 발라드는 변진섭이 집권했으며 뒤이어 신승훈이 집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승환, 윤상, 윤종신이 유명했습니다. 참고로 이탁은 출소한후에 현진영과 I.W.B.H를 결성(1997년)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습니다.

듀스 - 나를 돌아봐


탁이준이 - 예감했던 이별

(50)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 Tak2Jun2 - Hunch, 탁2준2 - 예감했던 이별, Saturday Night Music Show 19930703 - YouTube


https://goo.gl/Tcesl8 클론 - 쿵따리 샤바라
http://goo.gl/dwsCAH IWBH - 뻗어봐
http://goo.gl/C0RsCd 변진섭 - 너에게로 또다시 (1989年)
http://goo.gl/XomV 윤종신 - 오래전 그날 (1993年)






7. 이수만 힙합외에 여러가지 시도를 하다 - 김광진, 한동준, 유영진

이수만은 힙합외에 알앤비, 포크록, 발라드등 여러장르를 기획합니다. 이때 한동준과 김광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1집앨범을 기획합니다. 특히 김광진은 작곡능력까지 있었죠. 김광진은 1991년 한동준에게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라는 곡을 줬고, 같은 해 김광진 본인도 1집 앨범을 발표합니다. 하지만 1993년에 현진영의 필로폰사건으로 회사가 부도위기에 몰리면서 김광진과 한동준은 회사에 미래가 없다고 여겨 그만두게 됩니다. 그후 김광진과 한동준은 명곡을 발표하며 뛰어난 뮤지션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김광진의 대표곡으로 편지, 마법의 성등이 있습니다. 한동준의 대표곡으로 사량의 서약이 있습니다.)

https://goo.gl/OCD12T
한동준 - 그대가 이 세상에 있는 것만으로
http://goo.gl/Kwt4XJ 윤하가 부른 한동준의 명곡 - 사량의 서약

1980년대 후반 춤을 추고자 서울로 상경한 유영진은 MBC 무용단에 합격하여 활동을 하게 됩니다. 1992년 유영진은 군대제대후 가수가 되고자 여러 기획사에 여러 오디션을 봤지만 탈락의 고배를 거듭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유영진은 SM기획에 자신이 작곡한 음악 CD를 보냈습니다. 이때 이수만은 유영진에게 3일 정도 “곡이 더 있냐”고 물어보면서 유영진은 하루에 10곡씩 준비해 들려줍니다. 실력을 인정받은 유영진은 스스로 원해서 종신계약을 맺습니다. 1993년 1집에서는 한국 R&B 역사의 초기작이라 할 수 있는 ‘그대의 향기’가 나왔는데 유영진은 뮤직비디오에서 턴을 하기도 하였고, 1995년 2집에서는 댄스음악 ‘너의 착각’을 내놓는 등 R&B뮤지션과 댄서의 모습을 함께 보여줬습니다. 당시 그의 뒤에는 문희준과 강타가 춤을 췄죠.

유영진- 그대의 향기



1993년 하반기에 새로 오디션을 벌여 서연수와 임범준, 유한진을 발탁하면서 메이저라는 3인조 락밴드를 기획합니다. 성공을 확신한 이수만은 데뷔쇼케이스를 하였고 반응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 이들이 선보인 파격적인 헤어스타일과 도발적의상에 제재를 가했고 단정하게 나오지 않으면 방송활동을 할수 없다고 통보를 하였습니다. 이수만이 사활을 걸고 그들을 설득해도 그들은 비굴하게 음악을 할수없다고 거절하였고 결국 공중분해가 되어버렸죠. 이때의 아쉬움으로 이수만은 훗날에 트랙스라는 락밴드를 기획하게 됩니다. (서연수:메인보컬,프로듀싱; 임범준:백 보컬, 베이스; 유한진:드럼)

1994년 마지막으로 이수만은 2명의 재미교포로 이루어진 J&J라는 그룹을 선보입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이 없어 처참하게 망하고 이 모든 기획들이 실패한 SM은 나락에 빠집니다. 결국 수석프로듀서인 홍종화는 SM을 떠나는데 유영진이 그의 자리를 맡게 됩니다

Early spring day (이른 봄날), 1994 - 메이저(Major) 서연수, 임범준, 유한진


http://goo.gl/uvhyK3 J&J 강준식, 김주현 - 미지수야 미지수.1994


남은건 유영진뿐.
결국 이수만은 아이돌을 기획하기로 마음먹고 회사의 모든 역량을 쏟아붓기로 합니다. 그래서 장우혁, 토니안, 강타, 문희준, 이재원등을 연습생으로 캐스팅하여 H.O.T를 결성합니다. 이수만이 이런 기획을 하게 된 계기는 1992년경에 뉴 키즈 온 더 블럭이 내한을 하면서 한국에 큰 파장을 일으킨게 주요 계기 중 하나였는데 이수만이 예전부터 기획에 참고하던 미국의 유명 프로듀서 모리스 스타가 기획한 그룹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리스 스타는 당시 어린 소년을 찾아 수년간 트레이닝을 거친 후 데뷔시켰는데, 그것이 뉴 에디션과 뉴 키즈 온 더 블록 등으로 5인조 아이돌 그룹이였고 바비브라운이 뉴에디션출신입니다. 이수만이 바비브라운을 참고해서 현진영 와와를 발표한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죠. 또한 이수만은 걸그룹을 프로듀싱하기위해 TLC를 벤치마킹합니다. 이때 이수만은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시장을 노리는 원대한 비전을 피력하면서 유진, 슈, 바다등의 3인조걸그룹인 S.E.S를 결성합니다.

http://goo.gl/vA9kwb New Kids On The Block - Live In Seoul
http://goo.gl/FOTnV1 H.O.T.- 아이야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수만이 기획하고 유영진이 작곡한 H.O.T와 S.E.S가 데뷔하게 되고 그야말로 빅히트를 터뜨리면서, 나락에 빠진 회사는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후 1998년 신화, 1999년 플라이 투 더 스카이, 2000년 보아가 연속으로 히트하면서 아이돌기획사로 완전하게 탈바꿈을 하게 됩니다.

S.E.S. - Love

 

여가수 데뷔년도비교

김완선(1986) - 조갑경(1986) - 이지연(1987) - 김희애(가수:1987, 모델:1982, 배우:1983) - 원준희(가수:1988, 배우:1986) - 양수경(1988) - 이상은(1988) - 김혜림(1988) - 세또래(1988) - 강수지(1990) - 하수빈(가수:1992, 모델:1990) - 박준희(1992) - S.E.S(1997)


가수들 데뷔년도비교
소방차(1987) - 박남정과 친구들(1988) - 현진영과 와와(1990) - 나미와 붐붐(1990) - 서태지와 아이들(1992) - 철이와 미애(1992) - 듀스(1993) - 탁이준이(1993) - 클론(1996) - H.O.T(1996) - I.W.B.H (1997)

8090의 락밴드들
들국화, 블랙홀, 백두산, 부활, 시나위, 무한궤도, 015B, 넥스트, 서태지밴드

문나이트의 인맥
최진열, 박남정, 현진영, 이주노, 양현석, 유영진, 이탁, 박진영, 클론의 구준엽과 강원래, 듀스의 이현도와 김성재, R.ef의 박철우와 성대현, 신철과 미애, 룰라의 이상민과 신정환, DJ DOC의 이하늘과 김창렬, 지누와 션, 터보의 김정남, 영턱스클럽의 최승민

댄스가수의 그룹의 멤버에 관해서
박남정과 친구들: 박남정, 양현석, 이주노, 박철우, 김영완
현진영과 와와: 현진영, 1기 - 구준엽 강원래, 2기 - 이현도 김성재, 3기 - 션
서태지와 아이들: 서태지, 이주노, 양현석

SM의 초창기사람들
SM의 아티스트들: 현진영, 구준엽, 강원래, 이현도, 김성재, 이탁, 션, 김광진, 한동준, 유영진, 서연수, 임범준, 유한진, 강준식, 김주현
SM의 예능인: 이홍렬, 김승현, 신동엽

 

 

아날로그케이블을 HDMI모니터에 연결하기


부제: 구작 게임을 HDMI모니터로 즐겨보자




1. 게임기을 보유한 경우


예전에 나온 가전기기에서 S-video이거나 컴포넌트케이블을  모니터의 hdmi단자에 연결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또한 게임을 하면서 게임기의 케이블과 모니터의 단자가 틀려 연결을 못시키는 경우가 있다면?!

즉 PS2의 케이블은 S-video의 케이블인데 모니터의 단자는 hdmi인 경우엔 연결잭이 안맞아서 꼽을수없다.


예를 들면 PS2의 케이블은 S-video의 케이블인데 모니터의 단자는 hdmi인 경우엔 연결잭이 안맞아서 꼽을수없다.

만약 젠더를 구했다고 가정하여 꼽는다고 해도 신호는 잡히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물리적으로 연결을 해봐야 S-video는 아날로그 신호인데 hdmi은 디지털신호이기 때문에 디스플레이가 신호를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입력신호와 출력신호을 살펴보고 아날로그신호인지 디지털신호인지 따져

야 한다.





젠더는 아날로그와 아날로그를 연결하거나 디지털을 디지털로 연결하면 가능하다. 또한 입력이 디지털이고 출력이 아날로그일 경우 일부 가능하다.  하지만 반대로 입력이 아날로그인데 출력이 디지털일 경우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즉 이런경우 아날로그신호를 디지털신호로 바꾸는 컨버터로만 가능하다는 애기이다. 예를 들면 입력이 Hdmi이고 출력이 RCA이면 젠더용 케이블을 쓸수있지만 반대로 입력이 RAC인데 출력이 hdmi이면 컨버터밖에 없다.  여기서 젠더는 전원이 필요없이 그냥 케이블을 꼽으면 되지만 컨버터는 전원을 공급하는 어덥터가 필요하다.  그리고 게임기기을 모니터에 연결할때 S-video을 빼버리고 RCA만 꼽는다면 화질이 별로이므로 왠만하면 s-video가 달려있는 컨버터을 사야한다.



참고로 컨버터가 젠더용케이블보다 비싸다. 젠더는 국내와 해외가 가격이 비슷해 국내에서 사면 되지만 컨버터는 해외의 가격이 휠씬 싼 편이라 해외에 사는 것이 좋다. 해외쇼핑몰인 ebay나 aliexpress나 play-asia에서 구매하면 싸게 살수 있다. 단 배송기간이 매우 길다.


키워드는 S-Video to HDMI이다.

여기서 to는 앞이 입력, 뒤가 출력이다. 예를 들어 hdmi to S-video이면 입력이 hdmi이고 출력이 S-video이고 S-video to hdmi이면 입력이 S-video이고 출력이 hdmi이다.  


그래서 게임기을 HDMI모니터에 연결할려면 S-video to hdmi가 되는 Converter을 구해야한다.

s-video 인풋

HDMI 아웃풋


반대로 된것은 절대 사면 안된다.

예를들어 이런거

s-video 아웃풋

HDMI 인풋


https://www.aliexpress.com/wholesale?catId=0&initiative_id=SB_20190122222434&SearchText=S-Video+to+HDMI+









좀더 좋은 화질을 원한다면 PS2 컨포넌트케이블을 구매한후 Component to HDMI 컨버터을 쓰는 것이 좋다.
ps2 Component 케이블

컨버터







컨버터을 사면 부속품으로 어덥터를 주는데 어덥터는 자동으로 변압하므로 그냥 꼽으면 된다.
하지만 플러그 규격이 틀려서 신경을 쓰야하는데 일단 옵션에서 EU플러그을 선택한다.
다른 플로그는 모양이 틀려서 꼽을수없기 때문이다.
단 EU플러그는 구경이 작아서 헐렁헐렁한데 이때 220v 플로그을 끼우면 된다. 



한국의 표준 220V플로그, 링크에서 선택1번을 꼽으면 해결





케이블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주소를 참고하자.







2. 게임기가 없는 경우 

게임기는 없는 대신 고성능의 그래픽카드을 가지고 있는 경우 에뮬을 돌리는 것도 좋다.
에뮬은 다음것을 추천함. 단 바이오스와 게임은 스스로 구해보길.
우리에겐 구글신이 있으니 어렵지 않을것임.

소울엣지 ps1
ePSXe 2.05버전
Pcsxr
ePSXe과 Pcsxr중에 하나을 선택하면 되는데 
귀잖으면 ePSXe을, 성능을 택할려면 Pcsxr임

소울칼리버1 드림캐스트
nullDC-r150 KOR

소울칼리버2,3 PS2 
PCSX2 1.4.0

소울칼리버4,5 PS3 
rpcs3
5탄이 사운드가 가끔 끓기는데 해볼한 함.


+ Recent posts